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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파리, 무한 (上)

by 오독왕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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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다다다다-

아침 7시, 대부분은 따스한 햇살이니, 지저귀는 참새 따위를 말할지 모르나 내게는 이 소리가 자명종 역할을 한다. 집 건너편에서 나는 공사 소리가 아침부터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건 밤이 낮인 나와 다를 뿐이다.
굉음에 잠을 깨서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몸은 충분히 잤다며 재워주지를 않는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집 밖을 나갔다. 나가서 나를 깨운 그 소리 지름이나 구경하러.

현관을 나가 본 바깥 세상에서 반응하는 감각기관은 눈이다. 거의 모든 이들은 복도를 보겠지만, 등하산이 싫어서 1층 선택해서 문을 열면 주차장을 본다. 처음엔 흰색 애벌레가 모인 채로 더위에 말라비틀어진 걸로 느껴지나 그건 담배꽁초들이 담뱃잎을 토하고 있는 거였고, 그 옆에는 기계몸의 내장들이 갈색 커피 연료와 흩뿌려져 있다. 일회용 종이컵도 커피캔과 찌그러져있고, 원래 사각형인 흰 벌레 상자도 바닥에 찌부러져 있다.

시각 감각기관은 처음엔 정보를 받아들였지만, 이젠 내 기분을 표현할 차례다. 눈 위 언덕 잔디가 서로 붙으려 모였고, 더 이상 정보를 보고 싶지 않다는 표현과 생존을 위해 봐야하는 본능이 충돌해 가늘게 보는 것으로 협상했다. 그것도 잠시 익숙함이 평온함이 아닌 포기에 가까워지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서둘러 그 잔해들 앞을 지나간다.

둥지인 원룸을 나가 1차선 일방통행 골목을 건너 있는 다른 이의 둥지는 어미새가 아닌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기계로 소리를 지르며 짓고 있다. 이 괴물 앞에서 자극되는 귀는 참 야속하다. 바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기 기관 스스로를 지켜줄 양식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손이 나서 막아주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게다가 감각기관을 해치지 않지만 그걸 전달하면서 박히는 정보는 변질돼 감정을 토하게 한다.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상관 없어 보이는 두 개가 연결돼 하나가 되는 것. 내 현관 앞 쓰레기가 저들의 만행이라는 게 느껴진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지만 결정의 속도는 그보다 느리다. 이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화를 냈지만 소용없었다는 머릿속 의회의 결론이 정의봉을 치자 먼지 덩어리를 걸러낼 정도로 한 숨을 쉬고는 가버린다. 내 앞에 파리 한 마리가 비틀비틀 난다.

파리, 무한

2.
괴물의 트림과 방구질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생각하기 싫다. 내게 중요한 건 더 이상 없다는 것이고 낮시간에 편안히 잘 수 있다는 동화의 결말이다. 그런데 내 동화책을 너무 짧게 생각했던 걸까? 현관을 나선 바깥에는 작지만 참혹한 아포칼립스가 놓여 있었다. 이 참혹한 재난을 본 게, 내 손가락 중 한 손을 거의 다 쓸 지경이다. 여섯 개의 섬에서 불쾌한 무지개가 흰색 투명 방패 너머 보인다. 봉투 속 쓰레기는 물체는 흐리고 더러운 건 선명한 형태로 나와있고, 그 안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다만 내가 모르는 건 이 참상을 만든 독재자가 사는 나라로, 나는 탐정으로 빙의해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얇은 막으로 둘러쌓인 판도라를 열자 불쾌한 공기가 코를 습격한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닦았는지 알 수 없는 휴지, 컵라면은 불 색을 스티로폼에 발라둬 울긋불긋하게 물들고, 그 옆에는 허리가 나간 나무젓가락이 다른 이를 찌르고 있다. 물건을 보호하던 비닐옷도 그 속에 구겨져 역정을 내고 있고,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도 콕 박혀 있었다. 이래저래 뒤지다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고, 자신이 살아온 은밀한 숫자까지 보여주는 그 종이 아래 주소가 있다.

집주인의 요새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도 나처럼 1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건너편 사람이라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어떤 용건으로 찾는지 모를 기분으로 나와 만났다.

"누구시죠?"
"이 집 맞은 편 원룸에 사는 사람인데요. 제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벌써 네 번쨉니다."
"... 그건 그 집 쓰레기를 내놓은 거 아닌가요?"
"제가 혹시나 해서 뒤져 봤는데, 영수증에 찍힌 주소가 이 집으로 돼 있는데, 여기 맞잖아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잉크를 묻혀온 영수증을 보고, 그는 나와 영수증을 번갈아 봤다. 아마 주소는 안 봤거나, 보고 부정했을 거다.

"허, 참! 그런 거 찾자고 영수증을 뒤져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 세입자들이 내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린다고요!"
"아~ 알았어요. 제가 이야기해 둘 테니까 가세요, 가세요."

마지막 말은 해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귀찮으니 가라는 것일 테다. 특히나 문이 닫히기 직전 눈빛은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주인에게 항의하고 증거가 된 영수증을 다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뒤지며 나온 쓰레기를 정리한다. 내 옆 파리가 8자 모양으로 서성인다.

파리, 무한

 

- 상편 完 -

 

 

원본 출처

 

 

쓰레기 무단 투기범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소극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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